FreeStyle/이게

무한도전

공피 2011. 1. 22. 15:14
Prologue. 도전

여느 때처럼 의뢰받은 클마크를 이미지 게시판에 올리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 동안 만들었던 여러 마크들을 보고 있자니 많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지금 진행 중인 무한도전 이벤트가 생각난다.
지금의 나랑은 전혀 상관없을 거라 생각했던 그 이벤트.
하지만 내가 하고 있는 작업도 도전이 될 수 있지 않을 까 생각해본다.





어떤 일에 대한 가치는 스스로 부여하기 나름이다.
그래서 나 역시 이 이벤트에 응모해본다.
둘러보니 프리 슛폼 따라하여 멋들어지게 영상 편집하여 올린 분들도 있더라.
물론 그런 것에 비해 소박하겠지만 그래도 나 개인에겐 아주 큰 '도전'이었으니까.

미리 밝히지만 흥미 위주의 UCC가 아니다.
그런 걸 재밌게 만들 능력도 안 되긴 하지만
이 이벤트가 의도하는 것과는 전혀 반대의 성질의 것을 해봤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까를 보고 싶은 것도 있다.
이것도 생각하기에 따라서 도전이라고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Episode I. 동기

나는 지난 50일 동안 프리스타일 클럽 마크를 제작했다.
시작 동기는 몇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1. 내가 얼마만큼의 창조적 사고를 발휘할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서.
2. 재밌어서.
3. 심심해서.

물론 1번의 이유가 가장 지배적이었다.

나는 내 자신이 느끼기에도 많은 부분에 있어
자신이 정한 형식에 얽매이거나 혹은 그런 형식의 액자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내가 그 동안 프리 게시판에 쓴 글이나 편집한 동영상들을 보면
전부다 그런 형식 안에 제한되어있다.
실제로 나를 겪어본 사람들은 치밀하지만 피곤한 사람,
아마도 그렇게 기억하고 있으리라.
나를 알리게 해 준 <빨파 마스터>는 또 어떤가.
그깟 게임 기술조차도 정도나 원칙을 만드는 게 내가 살아가는 방법이다.

이미지 창작에 관한 활동은 오디오, 비디오 창작과 더불어
컴퓨터로 할 수 있는 가장 예술적인 활동이다.
사람이나 사물의 있는 그대로를 배껴놓는 걸 예술이라 말하는 사람은 없다.
나를 작가라 지칭할 생각은 없지만 예술은 모름지기 작가 가치관에 의해
대상이 변형되고 재해석되는 것에서 그 출발이 있다고 본다.

이미지의 변형을 위해서 필요한 창조적 사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유연하고 스스로를 버릴 수 있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나 스스로 변형과 변태가 필요했다.
어감이 이상한가? 영어로는 metamorphosis라는 멋들어진 단어가 있긴 하다.

그렇게 내 자신을 변태시키는 도전을 시작한다.





Episode II.

나는 컴퓨터 활용에 있어 잡다하게 능통한 편이지만
이미지 편집만큼은 그러하질 못하다.
하지만 위에서도 말했다시피 이러한 이유로 툴을 배우기 위해,
혹은 나 자신의 자기 개발을 위해 클럽 마크 제작을 시작한 건 아니다.
만약 그러했다면 포토샵과 일러를 통해 정식적인 단계를 밟았을 테니까.







AAA Logo Creator와 ArtIcons Pro라는 프로그램으로 클럽 마크들을 제작했다.
어디까지나 이건 마크보단 나의 정신 혁명에 그 목적이 있는 도전이니까.

컴퓨팅이나 툴 자체를 배우는 걸 겁내는 성격은 아니다.
군대 가기 직전에는 IRC 스크립팅을 배워 LOD iRC를 릴리즈했고,
군복무 시절에는 싸지방과 인트라넷을 오가며 윈도우와 PC 조립을 익혔다.

그리고 어제 개인적으로 제작한 윈도우 7 배포판
Windows 7 Void Edition x86 & x64 세 번째 버전을 릴리즈 했다.

http://windowsforum.kr/1622573





Episode III. 패턴

마크 제작 초기, 중기에는 프로그램에서 제공하는 기본 템플릿을
약간 변형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어떠한 변형을 할라치면 내 자신에게 확신이 없었고 두려웠다.
자유로운 변형을 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개체 진화의 보편적인 조건이 그러하겠지만
외압과 스트레스, 극한의 지점에 다다를 때 변이의 시간은 다가온다.

쓸 만한 기본 템플릿을 다 써버렸을 때 쯤 나 스로로 한계에 다다름을 느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무의식중에 여전히 패턴을 고집하고 있었고, (물론 지금도)
나중에 자연스러운 변형과 창조가 가능해졌을 때
고집했던 패턴들이 나에게 끼치는 영향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라데이션의 패턴
색상의 패턴
라인의 패턴
문양의 패턴
문자의 패턴

이런 일련의 수많은 패턴!
그건 단순히 이미지 창작의 패턴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달리 생각하면 지난 내가 그동안 지독스럽게 고집해왔던 삶의 패턴이기도 하다.

자신이 자신답게 살려면 아주 많은 것이 필요하다.

웃는 패턴
인사를 하는 패턴
공부를 하는 패턴
식사를 하는 패턴
심지어 프리를 하는 패턴까지!

그 모든 패턴이 '나'의 일부이며 '나'라는 의식을 낳지만
동시에 계속해서 '나'를 어떤 한계로 제약한다.

자기보존을 택할 것이냐 자기극복을 택할 것이냐의 몫이 남았다.
능동적인 죽음 앞에서 주춤거리던 최후의 인간의 공포가 나를 덮는다.

나는 묻는다, 지독스럽게 지켜왔던 패턴이 사라지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냐고.
니체가 대답한다, 죽을 수 없는 것은 살아있지도 않다고.





Episode IV. 사례

처음에는 무료로 만들어줬고, 그 다음엔 능력치 캐쉬템 정도
그리고 그 다음엔 무도 16렙 캐릭 정도로 사례를 받았다.
아는 분들은 그냥 만들어 드리기도 했고.

사례는 어디까지나 작업을 추진시킬 연료의 의미로 받자고 생각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았지만 크게 개의친 않았다.
돈에 목적이 있었다면 이렇게 효율 떨어지는 일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런 세상의 이치를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더 많으리라 본다.
모두가 나를 이해해줄 수 있다는 바람은 애초부터 갖지 않는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것이 나의 종교이자, 인간신이다.

인생이란 그릇의 크기는 순전 자신이 마음먹기에 달렸다.
눈치 보고 욕먹을 걸 걱정하는 순간부터 인생은 일시 정지 상태다.





Episode V. 성공

도전에는 항상 성공이나 실패라는 단어가 뒤 따른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사회와 대중은 성공만을 기억한다.
잔혹하지만 이 말은 어떻게 근사하게 포장해도 결국 사실이다.

그 동안 도전했던 것들을 되뇌어 본다.

전자과학실험대회, 과학, 공부, 농구, 프리킥, 육상, 가라데, 연애, 진학 
프로그래밍, PC, 컴퓨팅, 인코딩, 넌리니어, 웹, 저술, 입사 
울티마 온라인, 프리스타일

이것들 중 사회의 기준으로 성공이라 일컬을 수 있을 만한 성과는 없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의미의 무게를 판단할 순 없다.
단지 나의 인생이고, 나의 도전이다.
성공이냐 실패냐는 내가 판단한다.
또 내가 기억한다.





Epilogue.

도전이라는 단어가 거창한 뉘앙스를 띄어서 그렇지 편하게 쓸 수 있는 단어이다.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고
이런 이벤트에서야 거창하게 보여줄 수 있는 도전이 주목 받겠지만
나 자신에게 의미가 있고 성과가 있다면 그걸로 됐다고 본다.

무수히 흘러가는 역사를 인간은 기록한다.
나 역시도 자신의 역사를 이렇게나마 한 편의 기록으로 남겨본다.
패턴이니 변태니 하며 사유의 바다를 헤엄쳤지만
사실은 그저 지금 이 순간에도 이렇게 흘러가고 있을 나의 20대가 아쉬울 뿐이다.

먼 훗날 어른이 되었을 때 나 자신을 보며
노력해서, 원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의 역할이 있었고, 도전해서 결국 이뤘다고 말이다.





"너 자신을 네 스스로 불길로 태우고자 해야 한다.
먼저 재가 되지 못할 때 네가 어떻게 새로워지길 바라겠는가?"

- F. Nietzsche, 최승자 역,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청하, p. 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