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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각기동대 - 인간성을 극복하라

공피 2011. 1. 22. 16:05

관련영화 : 공각기동대

 

 이 글은 국내 니체 연구 권위자인 고병권님(서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 수료)이 집필한 <이것은 애니메이션이 아니다, 문학과 경계>에서 철학 텍스트의 대부분을 제외시켜 정리한 글입니다. 신체는 어떻게 자신을 변이시켰는가: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에 대한 철학적 감상의 원문은 해당 서적이나 인터넷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극장판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 1995)를 바탕으로 쓰인 글이며 TV판 공각기동대와 극장판 공각기동대는 원작 만화만 같을 뿐 감독에서부터 세부 설정, 그리고 주제에 이르기까지 전혀 다른 것을 말하고 있는 별개의 작품입니다.

 

 "공각기동대는 사색적 픽션의 뛰어난 작품으로 문학 수준에 이르렀으며 뛰어난 영상을 제공하는 진정한 최초의 성인 애니메이션이다. 그것의 디자인, 영상의 시, 테마의 깊이는 다른 공상과학 영화들과 구별시켜준다. 나는 오시이 감독에게 "매우 중요한 영상 작품"이라는 찬사를 보낸다."  

- 제임스 카메론

 

 

 


 
 "칸트 이래로 두 세기도 채 되지 않은 발명품의 종말이 선언되며, 인간은 미래에 존재할 수 없다. 미래는 초인에게만 속한다."{{A.D.Schrift, "Foucault and Derrida on Nietzsche and the End(s) of "Man"", Exceedingly Nietzsche, 1988. p. 136.}} 는 푸코(M. Foucault)의 주장은 <공각기동대>를 관통하는 중요한 철학적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차라리 "인간성" "정체성"을 버리라고 말한다. "그것은 자신을 제약"하는 것일 뿐이다. 그것도 아주 "능동적"으로 버리라고 말한다. 그럴 때 자신은 비로소 "생명"을 갖게 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주장은 "인간성 극복"을 철학적 과제로 삼았던 초인(bermensch)의 철학자 니체(F. Nietzsche)를 생각나게 한다. 짜라투스트라(Zaratustra)는 "인간의 죽음"을 능동적으로 실천하는 변이(transmutation)하는 자이다. "인간이 위대한 점은 인간은 다리이지 목표가 아니라는 점이며, 그것은 하나의 <과도기Bergang>이며 <몰락Untergang>이라는 점"{{F. Nietzsche,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청하. p. 54}} 이라고 말하는 짜라투스트라의 외침은 "인간성을 극복하라"는 철학적 과제의 선언이다.

 

 니체는 {짜라투스트라} 에서 "스스로 죽음을 원하는 인간"과 "최후의 인간"을 구분한다. 최후의 인간은 허무주의 극한의 지점에서 스스로를 보존하는 방식을 취하는 반면, 스스로 죽음을 원하는 인간은 최후의 인간을 관통하면서도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을 넘어선다.

 

 


 


 
 이야기의 배경은 가까운 미래 정보 사회, 2029년의 어느 아시아 국가. 컴퓨터와 통신기술의 비약적인 발달로 국가나 사회가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는 시대. 고도로 발달한 과학의 힘으로 인체는 손쉽게 전자부품으로 대체되고 인간의 두뇌 역시 부분적으로 컴퓨터화 되어 전뇌(사이버네틱)라 불린다. 자연히 범죄는 갈수록 지능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이에 대처하기 위해 정부는 비공식적인 특수 경찰팀 공안9과, 통칭 공각기동대를 발족시킨다. 작품의 주인공 쿠사나기 모토코 소령은 이 공각기동대의 리더, 역시 전뇌를 가진 여성이다.

 

 하나의 사건이 시작된다. 정보기술의 개발을 통해 전 세계를 네트를 통해 넘나들면서 각종 프로그램들을 조작하고 파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낸 외무성!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프로그램이 독자적 행동을 취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하지 못했다. 인형사(Puppet Master)로 불리는 그 프로그램이 통제를 벗어나자 이들은 자신들의 음모가 세계에 알려질 것을 두려워하여 인형사를 회수하기 위해 달려든다. 외무성의 6과는 가베르 공화국의 혁명이전의 우두머리였던 마레스가 가베르 공화국과의 협상을 방해할 목적으로 고스트 해킹의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식으로 문제를 왜곡하여 그의 송환구실을 만들어내고 인형사의 체포가 외교적 문제와 관련된 것이므로 자신들의 관할이라고 주장하며 문제가 다른 곳으로 퍼져가는 것을 막는다. 수사를 맡은 9과는 인형사의 탄생의 비밀을 알지 못한 채 그를 전뇌(사이버네틱)를 해킹하는 일급의 범죄자로 규정하여 채포하기위해 나선다.

 

 인형사는 자신을 끊임없이 바꾸고 도처에서 출몰하는 (ever-changing and omnipresent) 막강한 범죄자이다. 인형사는 과학기술의 극한적 발전이 산출해낸 과학기술의 이질적 지대이다. 그것은 기존의 기술이 닦아놓은 정보고속도로를 타고 다니며 추적을 따돌리고 해킹한다.

 

 


 


 
 인형사를 추적하는 6과와 9과의 레이스를 지켜보면서 우리는 이 시대 인간들의 군상을 만나게 된다. 허무주의 시대 인간들의 행진! 인형사로부터 고스트 해킹을 당한 청소부는 장소를 계속 바꾸면서 접속을 시도하는데 그것은 자신에게 이혼을 요구한 부인의 마음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이 순박한 청소부가 인형사로부터 단순히 사기 당해서 그런 범죄(?)를 저질렀다고만 해도 우리는 그토록 놀라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사결과 이 청소부는 부인이나 예쁜 딸이 없는 독신자였다. 부인에 대한 기억도, 예쁜 딸에 대한 기억도, 머릿속에 있는 가족과의 아름다운 추억도 모두 가짜다. "분명 있었어. 내 딸이..."라고 말하는 청소부의 눈빛은 온통 슬픔뿐이다. "이 꿈은 어떻게 지울 수 있죠?" "유사체험도 꿈도... 존재하는 정보는 모두 현실이고 동시에 환상이지!" 그토록 고집스럽게 지켜왔던 기억, 자신이 그토록 동일시해왔던(identify) 정체성(identity)의 보루는 무참히 깨지고 만다.

 

 "어쩌면 자신은 아주 옛날 죽었고 지금 난 전뇌와 의체로 구성된 가짜 인격이 아닐까 하고. 주변 상황을 보고 "나"다운 게 있다고 판단하는 것 뿐." 이라고 말하는 소령의 모습에서 과도한 전뇌화로 인해 스스로의 정체성을 깨달을 수 없는 인간을 만난다. 소령은 정체성과 기억을 버리고 초월의 존재가 되어야 함을 희미하게 느낀다. 우리의 기억은 타자의 기억이고 우리의 목소리는 타자의 목소리다!

 


 


 
 고도로 발전된 기술도시(techno oriented world)와 재래시장을 형성한 물리적 지대(physical world) 사이로 소령의 고독한 걸음걸이가 이어진다. 고층빌딩과 빈민가의 대조적 풍경이 계속해서 교차하고 쓰레기들이 널려있고 하수오물이 흘러 다니는 천 주위로 걸어가는 사람들의 눈빛은 한없이 흐리다. 빗방울은 최후의 인간들에게 보내는 비가(悲歌)일까? 쇼윈도 안에 있는 마네킹이 클로즈업 되지만 그 앞을 무심코 걸어가는 인간들과 더 이상 구분되지 않는다. 인형이 된 인간들, 프로그램화된 터미네이터들이 열을 지어 행진한다. 수동적 허무주의, 즉 허무주의의 본질이 실현된다.

 

 미래는 더 이상 희망을 주지 못한다. 그것은 오히려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미래는 더 이상 또 다른 미래를 낳는 능력을 상실한다. 빛의 속도로 질주하고 접속하는 시대의 화면은 빛을 상실해 온통 어둡기만 하다. 빛은 다른 미세 입자들에 막혀 희미하게 숨을 고를 뿐이다.

 

 


 


 
 네트가 우리 자신의 뇌에까지 연결되고 영혼이 그것에 접속될 때 우리는 우리의 이름을 잃기 시작한다. 쿠사나기 소령 역시 자기 고스트의 과거에 대해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녀의 영혼 역시 그녀의 전뇌(사이버네틱)에 의해 심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의식의 동일성이 어떤 것인지, 누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인지에 대해 말하지 못한다. 그녀는 자신의 신체, 더 이상 비유적 의미가 아닌 사실 그대로 기계인 자신의 신체에 대한 극심한 회의에 빠진다.

 

 "편리하다니까 맘만 먹으면 체내 화학물질로 순식간에 알콜을 분해시키고 말짱해질 수 있거든. 가능성만 있으면 어떤 기술로든 실현시키려는 게 인간의 본능 인가봐. 대사제어 지각 예민화, 운동능력과 반사능력 향상, 정보처리 능력 고속화의 확대. 전뇌와 의체에 의지해... 초인적인 능력을 추구한 결과 정비를 받지 않으면 살수 없게 됐지만 불만을 얘기할 처지는 못 되지."

 

 이제 그녀는 조금씩 변이를 꿈꾼다. 그녀는 자신의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다. 그것은 불가능하며 돌아간들 아무런 의미도 없다.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심지어 인간의 본능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어떤 도덕적 위안도 가질 수 없을 만큼 그녀는 삐딱(!)하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의 생성의 공간에 잠수한다. 바다는 실제 바다이며 또한 정보의 바다이다. 그녀는 네트에 끊임없이 잠수하면서 또한 바다에 틈날 때마다 잠수한다. 바다는 생명체의 근원이라고 한다. 그러기에 새로운 생명체 역시 정보의 "바다"에서 태어난다.

 

 

 


 
 바토는 소령에게 잠수가 어떤 느낌이냐고 묻는다. 또한 "바다가 두렵지 않나? 플로터 작동이 멈추기라도 하면..."이라고 걱정한다. 죽음을 부를지도 모르는 생성의 공간 바다에 대한 공포에 대해 바토는 무척 심각하다. 소령은 잠수의 과정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공포, 불안, 고독, 어둠 그리고 약간의 희망. 물위로 솟아오를 때 새로운 내가 되지 않을까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지."

 

 소령은 점차적으로 다른 신체 되기의 예비적 작업을 진행한다. 그러나 아직 그녀에게 변이를 의욕 하는 의지는 무겁고 심각하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접속하는 강한 변이의 신과의 만남을 예고하는 신호들은 계속해서 나타난다.

 

 "인간이 인간으로 살기위해 많은 부품이 필요하듯이, 자신이 자신답게 살려면 아주 많은 것이 필요하지. 타인을 대하는 얼굴, 자연스런 목소리, 눈뜰 때 응시하는 손, 어린 시절 기억, 미래의 예감... 그것만이 아냐. 전자두뇌가 접속할 정보와 네트워크 그 모든 것이 "나"의 일부이며 "나"라는 의식을 낳고, 동시에 계속해서... "나"를 어떤 한계로 제약하지."

 

 인간은 이 많은 것들로 "구성"된다. 이 많은 것들의 교차점에 인간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에 그치지 않고 내 전뇌(사이버네틱)가 접속할 수 있는 정보와 네트의 넓이 그것이 나라는 의식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은 나를 어느 한계로 제약한다. 나는 "나의 능력만큼 접속 할 수 있고, 그것은 또한 나의 한계다." 이제 나는 나를 바꾸어줄 방대한 정보와 네트를 가진 어떤 신체와의 만남을 꿈꾼다.

 


 


 
 지극히 과학적인 논리 안에서 생겨난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 6과는 공성방벽을 이용해 고스트를 특정한 의체에 집어넣는데 성공한다. 그 의체는 9과로 인수된다. 그러나 9과에 들어간 인형사는 자신의 정치적 망명을 요구한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에 대한 흥미로운, 하지만 중요한 논쟁에 접어든다.

 

 "넌 단순한 프로그램일 뿐이야."

 "그렇다면 당신들의 유전자도 자기보존을 위한 프로그램에 불과해. 생명이란 정보의 흐름 속에서 생긴 결정체 같은 거지. 인간은 유전자라는 기억 시스템을 통해, 기억에 의해 개인이 되는 거야. 기억이 환상이라 해도 인간은 기억으로 살아가는 거지. 컴퓨터가 기억을 조작하게 됐을 때 인간은 그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했어야 했어."

 

 프로그램이 망명을 신청할 때 이들은 몹시 당혹해 한다.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을 기억을 통해 유지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프로그램에 불과하다. 인간은 흐름들의 "결절점"과 같은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이루는 여러 흐름들 사이의 교차점에서 탄생한다. 여기서 인간에 대한 과학적 정의(scientific definition)는 필연적으로 실패한다!

 

 "말도 안 돼! 네놈이 생명체라는 증거는 없어."

 "누구도 그것은 증명할 수 없지. 현대과학은 아직 생명을 정의 못해. A. I(인공지능)는 아니다. 내 코드명은 프로젝트 2501. 정보의 바다에서 태어난 생명체지."

 

 인형사는 자신의 망명을 요구하며 자신과 관련된 정보를 공개하기 시작한다. 자신은 "프로젝트 2501"이며 "정보의 바다에서 태어난 생명체"다. 문제가 심각해진 것을 안 6과는 광학미체를 통해 함께 온 전차를 이용하여 9과 안에서 난동을 부리고 그 사이에 인형사의 의체를 가지고 도주한다. 토구사는 도주한 6과의 차량을 추적할 수 있도록 기지를 발휘하며, 이시가와는 외무성 네트에 잠수하여 외무성이 추진했던 비밀 프로젝트의 신비를 풀 많은 열쇠를 찾아낸다. 그는 인형사가 외무성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며, 그것은 인형사의 범죄가 일어나기 전의 일이고, 메인프로그래머가 영화 시작부분에서 나왔던 망명을 요청한 다이타 미즈보라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6과의 하얀 세단을 추적한 소령은 인형사와 접촉할 기회는 지금밖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소령은 인형사를 탈환하기 위해 혼자서 전차와 전투를 벌인다. 웬만한 느와르보다 뛰어난 액션들이 이어지고 첨단 무기들이 등장한다. 이 전투 장면에서 다시 한 번 중요한 장면이 지나간다. 전차가 난사하는 총알들이 박힌 곳은 다름 아닌 진화계통도! 그것은 생명체들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그림이며 다른 동물 되기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변이의 시간이 가까워졌음을 직감하게 해준다.

 

 물리적 충돌 앞에서 필연적으로 큰 힘에 의해 해체되는 보다 작은 힘. 소령은 전차의 뚜껑을 들추기 위해 힘을 방출한다. 소령이 낼 수 있는 힘의 최대치! 그것은 소령의 의식을 만들고, 동시에 그것은 소령을 어느 한계로 제약한다. 이 한계를 넘어서면 스스로가 해체될 것임을 소령 자신도 잘 알고 있다. 허나 그런 두려움은 초극에 대한 소령의 갈망을 넘어서지 못한다. 준비되지 않은 소령의 신체는 해체의 위기를 맞는다.

 

 마침 대전차용 무기를 들고 온 바토의 도움으로 전차를 물리친다. 소령은 처참히 파괴된 자신의 신체를 이끌고서 인형사에게 접속하기 위해 나선다. 보다 상위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상위 개체와의 만남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새로운 존재와 초극에 대한 갈망이 만들어낸 본능! 한 신체는 그 자신의 한계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인간은 어떻게 몰락하는지 모든 신비가 일어나는 생성(becoming)의 시간이 다된 것이다.

 


 


 
 인간은 인간의 본질이 아닌 다른 본질에 상응하는 관계로 대체될 때 극복된다! 그것은 어떻게 가능한가? 니체는 긍정의 신, 디오니소스를 만날 것은 권유한다. 그리고 디오니소스를 향하면서 그의 사도가 되는 것, 자기 안에 디오니소스를 가지는 것이다. 짜라투스트라는 디오니소스를 만나면서 초인이 된다. 짜라투스트라가 변이가 필요한 영웅이라면 디오니소스는 존재 그 자체가 긍정인 그리스의 신이다. 짜라투스트라는 변이하는 자로 그는 무거움을 가벼움으로 바꾸며, 낮음을 높음으로, 고통을 기쁨으로 바꾸는 자이지만, 디오니소스는 생성과 생성의 존재를 긍정하고 다수성과 다수성의 고유성을 긍정하고 우연의 필연을 긍정한다. 짜라투스트라는 초인의 제자이면서 초인의 아버지다. 그는 초인을 낳는다. 지금까지의 자기 자신을 죽이고 초인을 낳는다. 그는 자신의 미래를 낳는다. 비로소 그는 변이한다.

 

 "겨우 너와 연결됐군. 시간을 많이 투자했지. 네가 나를 알기 전부터 난 널 알고 있었지. 네가 접속한 네트워크 흔적으로 9과의 존재도 알았지." "이 의체로 들어간 건 6과의 보안망 탓이었지만 9과로 도망친 건 나의 의지였다."

 

 합체를 앞둔 소령과 인형사의 대화는 변이를 둘러싼 많은 것들을 드러낸다. 인형사는 생명에 대한 윤리적 정의(ethical definition)를 내린다. 과학적 정의가 윤리적 정의로 대체된다. 윤리적 정의에 이르러서 정의는 강함의 표시, 즉 능력의 표시가 된다. 그는 생명을 생성(becoming)이 만들어내는 차이(difference)라고 정의한다.

 

 "날 좀 더 이해시킨 후에 너한테 부탁할게 있어. 난 스스로 생명체라 말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불완전하지. 내 시스템에는 자손을 남기고 죽음을 얻는... 생명의 기본적인 과정이 없거든."

 "복사체를 남기잖아."

 "복사체는 유사품에 불과해. 바이러스 하나로 전멸할 수도 있고 개성이나 다양성을 못 가지지. (진화계통도 쪽으로 눈을 돌리면서) 영원히 존재하기 위해선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면서 버릴 것은 버려야만 하지. 세포가 대사 활동을 반복하고 새로 태어나고 또 다시 죽지. 죽을 때 많은 경험 정보를 지우고 유전자와 모방자만 남기는 것도 영원한 존재를 위한 방어기능이지."

 "영원히 존재하기 위해 개성과 다양성을 원하는군. 하지만 어떻게?"

 "너와 융합하고 싶다."

 

 복사는 복사일 뿐이다! 그것은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것은 되기(becoming)의 능력이 없다. 그런 점에서 그것은 "능력"이 없으며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생성이 만들어내는 차이만이 개성과 다양성, 우연성을 생산한다. 인형사는 소령에게 융합하자고 말한다. 서로의 신체가 변화하지만 아무 것도 잃지 않는 융합!

 

 


 


 
 "융합하면 난 언제 죽지? 나의 유전자는 남지도 않는 건가?"

 "유전자는 물론 모방자로 남을 수 있어. 융합 후의 새로운 너는 내 변종을 네트에 흘리지. 인간이 유전자를 남기듯 말이야. 그리고 나도 죽음을 얻게 되지."

 "왠지 그 쪽만 득 보는 것 같은데..."

 "내가 가진 기능을 과소평가 하는군." (소령과 인형사를 저격하려는 헬기의 주파수가 변하면서 통제 불능에 빠진다. 주파수 변환코드는 최고기밀이라는 대화가 들린다.)

 

 정체성의 위기를 느끼는 소령의 질문이 계속된다.

 

 "한 가지 더! 내 존재가 남는다는 보장은?"

 "보장할 순 없지. 인간은 계속 변하는 법이고, 지금의 너로 남으려는 집착은 너를 계속 제약할거야."

 

 그녀가 언젠가 다이브를 하면서 바토에게 들려주었던 이야기가 인형사의 입을 통해 드러난다. 너를 제약하는 너 자신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는 한 너는 극복되지 않는다!

 

 소령은 죽음 앞에서 공포를 느낀다. 니체가 "모든 익은 것들은 죽음을 욕망한다." "나는 너희가 능동적으로 죽는 죽음을 원한다."고 했던 것 앞에서 주춤거렸던 최후의 인간의 공포가 소령을 덮는다. 그녀는 자신이 죽을 때는 어떻게 되느냐고 묻는다. 인형사는 "죽을 수 없는 것은 살아있지도 않다."고 말한다.{{"너 자신을 네 스스로 불길로 태우고자 해야 한다. 먼저 재가 되지 못할 때 네가 어떻게 새로워지길 바라겠는가?" F. Nietzsche, 최승자 역,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청하, p. 104}}

 

 "마지막으로 하나 더! 날 선택한 이유는?"

 "우린 서로 닮았다. 거울을 볼 때의 실체와 허상 같지. 잘 보라고. 내게는 방대한 네트워크가 있어. 접속해 있지 않은 너에겐 단순한 빛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를 일부로 포함하게 될 우리의 집합체! 사소한 기능에 구속받고 있지만 제약을 버리고 더 높은 상부 구조로 올라갈 때가 왔지." (더 이상 소령에게 그것은 단순한 빛으로 보이지 않는다.)

 

 인형사는 자신에 맞는 신체, 서로 닮은 신체를 능동적으로 찾아 나선 높은 능력의 신체다. 그는 자신의 신체를 구성하는 방대한 네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전체의 일부이면서 자신을 통해서 전체를 포함하는 그러한 부분이다! 두 신체는 결합하고 소령의 신체는 변이를 경험한다.

 

소령과 구분되는, 즉 변이에 실패하는 "최후의 인간"은 바토이다. 그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자신의 정체성을 파괴하지 못한다. 자기극복(self-overcoming)을 택한 소령과는 달리 바토는 자기보존(self-preserving)을 택한다.

 

 "고마워하긴 일러. 위험해지면 접속을 끊고 널 들쳐 업고 도망가야 하니까. 끈질긴 악연이라고 가능한 한 버텨보겠지만 그놈과 함께 죽을 생각은 없어."

 

 "네가 놈을 흡수한 거야, 아님 놈이 널 빨아 들인 거야?"

 

 바토는 소령과 인형사의 합체를 방해하려하지만 그는 그것을 방해할 정도의 강함을 가지고 있지 못한다. 그는 {짜라투스트라} 에 등장하는 최후의 인간들이 짜라투스트라를 사랑하고 그를 염려하듯이 소령을 사랑하고 염려하지만 변이할 수 없는 인간이다. 짜라투스트라는 최후의 인간들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도 그들을 사랑할 뻔 했다. 그것이 최후의 시험이었던 "연민"이다. 그러나 짜라투스트라가 변이를 겪을 때 그는 말한다. "신 또한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죽었다. 가장 추악한 인간에 대한 연민!"

 

 

 


 

 "어두운" "변이의 밤"이 지나자 소령은 새로운 신체를 갖게 된다. 단지 어린아이의 의체를 빌려서가 아니라 이제 소령은 다른 신체다! 전혀 다른 목소리로 말하는 소령은 이해하지 못하는 바토를 위해 선의를 베푼다. 소령 본래의 목소리를 약간 들려준다. 바토에 대한 소령의 연민!

 

 바토는 자신 "소유의" 집에 머물 것을 권하지만 그곳에 갇힐 여인은 이미 죽었다! 바토는 소령에게 어떻게 다시 만날 수 있느냐고 묻는다. 소령은 비밀번호 2501을 가르쳐준다. 그러나 비밀번호 2501이 의미하는 것은 차라리 인형사, 코드명 2501이 가졌던 긍정의 정신이 아닐까?

 

 ""바토" 언젠가 바다에서 들은 목소리를 기억해? 그 말 앞에는 이런 구절이 있지. 어릴 때는 말도 어린아이답게 생각도 어린아이답게 논하는 것도 어린아이답지만 어른이 되고 나면 어린 시절을 버리네. 이젠 "인형사"란 프로그램도, "소령"이란 여자도 없어."

 

 이제 능동적으로 "이름을 잃은" 신체의 여행이 시작된다.

 


 


 

 "자, 어디로 갈까? 네트는 광대해!"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 - Reincarnation(환생)




원문: http://movie.naver.com/movie/board/review/read.nhn?nid=533305&code=23917